'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 하고싶은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 시점에서,
나는 어른에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도 좋아한다는 감정은 따뜻하고 설렌다.
숨기는 재미도 있고, 괜히 초등학생 풋내기 마음 흉내내는 것 같아 즐겁기도 하다.

자꾸 생각이 나고, 니가 한 말들이 머리 속을 맴돌아.
종이에 네 이름 써보는 것도 너무 즐거워,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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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를 시작했다.

내일 사전 테스트를 거쳐서 나와 맞은 상담가를 선정하고

심리치료가 10회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 한다.

이건 내 마음 속 상처를 뿌리뽑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다.

약물치료는 일시적으로 통증을 완화시켜 줄 뿐, 근원적인 상처를 캐내지는 못한다.

상처에 직면하고 뿌리채로 뽑아내는 방법 외에는, 

생각컨데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이전에 마음이 심하게 요동칠 적에, 난간 끝에서 아주 미미하게 남은 이성으로 찾은

살아야 할 이유가 세 가지 있었다.

하나는, 내게는 부모님이 계시고, 난 꼭 잘해드릴 것이라 약속한 것

두번째는, 이런 내 성격에도 내게는 친구가 있다는 것,

세번째는, 적어도 내가 꿈꿔온 일을 한 번은 해봐야 함.

이 세 가지였다.

언제 어디서 이성이 끊어질까봐 손바닥에 펜으로 적었다.

미친 듯 충동이 들면 손바닥을 펴서 그것만 봤고, 지워지면 또 쓰기를 반복했었다.


오늘은 두 번째의 이유가 되는 그 친구에게 내가 심리치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친구에게 내 속내를 이야기한다는 일은 엄청나게 망설이고, 고민한 끝에 결정한 일이었다.

사람에게 데인 탓에 사람을 못 믿는 불안감을 타파하는 나름의 첫 단계이기도 했다.


6년 동안, 자존심 때문에 남 앞에서 힘든 기색 한 번 못했고

마음에 상처가 있어도 오히려 이 친구에게 짐이 될까봐 말 못했다.

또, 언젠가 지금 내가 힘들기 때문에 뱉어버린 내 약한 부분이

훗날 내 흠이 되어 떠돌까봐 겁났기 때문에 말 못한 것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나는 '항상 의지하기 좋은 사람'이길 바란 이유도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 남에게 기댈 어깨를 주니 내 자신이 무너지는 건 몰랐던 것이다.

이 말들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살고 싶지 않았던 순간, 절박해서 살려 달라 말하던 순간, 악몽의 연속이었던 밤, 모두 내뱉었다.

말을 꺼내고 얼마 안되어 친구가 눈이 벌개지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미안하다고 말한다.

옆에 있는데도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던 것 같아 미안하다 한다.

그저 니 말을 들어줄 수 있는 귀 두개가 있는 것이 감사하다 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한건 내 불안함 때문인데 친구가 미안하다 하니 말을 하던 내 입도 막혀버렸다.

또.. 누가 이렇게 나 때문에 울어줄 수 있을까 싶었다.

기대는게 싫다고 내게서 멀어지는 사람은 그건 내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나도 버리면 그만이라 하며, 그 사람은 고작 그것밖에 안되는 사람일 뿐이라 한다.


친구가 우는 순간에도 

'그래 그 여자도 날 속일 때에 이렇게 울었지'라고 불안감이 어디선가 몰려왔기에 내가 미련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그 여자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내 친구를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믿는다.



잘 할 수 있다.

자신있다.

진심으로 날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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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건 항상 조심스럽다.


나는 천주교(가톨릭) 신자이다.

조부모님 때 부터 이어온 3대째 신자.

우리 집이 천주교 집안이라 해도, 

제사 때면 정성껏 제사 음식 준비하며 공손히 제사를 올릴 줄도 알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조부모님으로부터, 교리로부터 배웠다.


성당을 다닌다고 해도 이따금씩 산행이나, 부모님 따라 여행을 가게 되면

고즈넉한 산사가 나오는데, 산사 안을 두루 구경하며 예를 갖출 줄도 안다.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무교인 사람들에게도 거부감이 들게 내 종교를 권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면 안된다 배웠다.


마음이 힘들 때에 종교적 힘이 빛이 되었다는 것을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낯이 간지러운 느낌 때문에 말을 못했지만,

언제 또 이 기분을 되새김할 수 있을지 몰라 블로그에 써놓기로 했다.


비가 계속 내리는 걸 보고있자니 무언가 내가 마음먹은 바를 하늘이 응원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격하게 요동치던 시간을 보낸 것도

이제 '스스로를 용서하고 치유하기를 시작하라'는 기점을 짚어주시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신부님과의 면담을 통해서 '용서할 수 있다'는 것에 확신을 가진 것은

신부님이 하느님을 대신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후련해졌고

굳이 비밀이라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 분께는 비밀일 수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했던 말, 간절하게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다.


'수고했다, 이제 조금 쉬어라'


음절 하나하나, 내게 온전히 필요한 말이었다.

미처 말하지 못한 갈라진 마음 틈새에 숨은 그 먼지까지도 꿰뚫어 보신 것 마냥,

빠진 퍼즐 조각 하나 더 던져주신 그 느낌.


사람이 사람에 지쳐 상처받았을 때에는 이렇게 초인적 존재가 필요할 수 있다.

사람 때문에 사람을 못 믿는다면, 이렇게 의존하는 것은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된다.

나처럼 현실주의적인 사람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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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ted by NOT FOUND at 2013.06.25 21:10 신고

    3대째 이어오는 카톨릭 신자이시라니 부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스로를 용서할 줄 아는 마음, 저는 언제 그런 아량이 들까 싶네요...
    여기도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요.
    저 또한 사람에게 많이 지치는 계절입니다.
    초인적인 존재가 그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좋은 글, 위안이 많이 되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2. Commented by at 2013.08.29 16:34

    비밀댓글입니다

    • Commented by mongoo at 2013.10.11 01:03 신고

      답이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제 댓글을 보실 수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종교를 권한다는건 정말로 조심스러운 일이고 가급적이면 하고싶지 않은 일이기도 해요. 무리한 권유가 자칫 거부감을 살 수도 있는 일이고, 저 또한 겪은 바 이거든요. 저의 경우에는 정말 벼랑 끝에서 종교를 찾았어요. 사람에 데여서 그 누구도 신뢰가 가지 않고 곁에 두고 싶지 않을 때 갔거든요. 교회는 고객관리한다는 느낌이 들어 피했었고, 성당은 어릴 때 부터 늘 친숙했기에 그리 선택했지요. 굳이 성당이 아니라도 좋고, 고즈넉한 절간이라도 좋아요.. 내가 힘 얻으려 간 곳에서 더 혼란스러우면 종교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분명하겠죠?ㅎㅎ 편히 둘러보시고 내가 진짜 편한 곳에 마음을 두시는게 나을 것 같아요.